선잠, 박준 murmur


그해 우리는
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

같은 음식을 먹고
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

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
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

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
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

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
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

잠에 든 것도 잊고
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

ㅡ박준, 《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》(2018), 문학과지성사.


너무 좋아서 아껴가면서 읽어야지 했다가,
또 너무 좋아서 아냐, 또 읽으면 돼, 하고 다 읽어버린 시집.
매 수업마다 소름 돋았던 전공수업 시절이 생각났다.
신형철 평론가가 쓴 발문까지 완벽하다. 혹시... 어쩌면... 싶었던 부분까지 제대로 짚어주는 교수님의 강연처럼.

이리저리 지나다니며 남긴 주절주절 말 몇 마디,
어느새 이 계절인가 싶은 날씨 한 자락,
깊은 산 중 아득해지는 풍경 한 폭,
고슬고슬 잘 지은 쌀밥과 파르륵 끓여 낸 쑥국 한 그릇,
그런 사소한 것이 다 소중하고 다정한 문장들이다.



덧글

  • DreamDareDo 2019/01/16 13:08 # 답글

    아름다운 글이네요. 책 한번 빌려봐야겠어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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